문화유산 알기 운동

석당 최남주 선생 (石堂 崔南柱 先生)

평생을 신라문화재 발굴보존과 경주(慶州)를 위해 헌신하신 故 석당 최남주(1905~1980) 선생이 탄생하신지도 어언 100년의 성상이 흘렀다. 선생은 1905년 경주에서 출생하셨으며, 1926년 1월 우리나라 민간문화재 보호단체의 효시인 경주 고적보존회에 첫발을 내디딘 이후, 1926년 6월, 경주 박물관 창설에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참여하심으로써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 고고학계와 신라 문화재 보존에 크게 공헌하셨다. 특히 선생의 업적 가운데 잊을 수 없는 것은 1926년 10월 10일 스웨덴의 구스타프 황태자와 동참한 경주시 노서동 서봉총(瑞鳳塚) 발굴이다. 세계적인 고고학자이신 구스타프 황태자와 함께 신라시대 찬란한 황금보관을 발굴하신 사실은 7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학계에 커다란 업적으로 남아있다.
또한 선생은 1934년 10월 31일에 경주의 남산신성비(南山新城碑)를 발견하셔서 신라사(新羅史)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시기도 했다.
평생을 신라고도 경주를 지키면서 우리민족문화재 보존과 발굴에 헌신하신 선생의 업적을 여기에 모두 소개할 수 없지만 그 내용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1926년부터 1939년까지 우리나라 불교미술의 보고(寶庫)인 남산불적(南山佛蹟)의 학술조사에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참여, 수많은 불교문화재들을 발견하셨다. 물론 선생의 경주남산불적 조사연구에 대한 열의는 일평생 동안 지속되어 후학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을 아무도 부인할 수 가 없다. 또한 선생은 경주 외동면 원원사지 석탑을 복원하셨고(1933년), 1938년에는 우리나라 미술사학계 개척자이신 우현 고유섭(又玄 高裕燮) 선생과 문무대왕(文武大王)의 장지와 그 유적이 있는 동해구(東海口)를 답사하신 바 있으며, 해방을 맞이한 이후와 6.25동란 와중에도 끊임없이 경주문화재보존 연구에 전념하셨다.
선생은 6.25 동란이후, 청빈한 살림살이에도 불구하고 사재를 들여 무열왕릉비각(武烈王陵碑閣)을 건립하고(1952년), 석탈해왕능 비석(昔脫解王陵 碑石)을 세워 허물어져 가는 문화재보존(文化財保存)에 앞장을 서기도 하셨다.
그 이후 선생은 흥덕왕릉 비단석을 발견하여(1957년) 왕릉의 주인공을 밝히는 데에 결정적인 자료를 제공하셨다.
경주 천북면 동산리와 내남면 망성리 신라 최대 토기요지 또한 석당 선생의 업적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경주의 산야와 남산의 이름 없는 골짜기에 무수히 산재한 문화재에 선생의 따스한 손길이 가지 않은 곳이 없었다. 실질적인 문화재 보호와 애호심이 부족했던 당시에 누가 이처럼 신라문화와 경주에 대한 사랑을 가졌으랴! 이후에도 삼국사기에 기록된 김유신 장군의 통일기도장인 열박산(咽薄山)유적지를 발견하셔서(1971년) 학계에 각광을 받으셨다. 노년에는 백발을 휘날리면서 신라의 얼을 찾아 유적들을 답사하시면서 신라문화와 경주를 국내는 물론 외국의 학생과 학자들에게 올바로 알리기 위해 무수한 노력을 하셨다.
그 결과로 선생은 1970년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훈(受勳)하셨다. 그리고 1972년 선생은 서봉총발굴의 인연을 통하여 한국과 스웨덴 간의 문화교류에 공헌한 공로를 인정받아서 스웨덴 왕실부터 당시 동양인에게 최초로 수여된 스웨덴 최고훈장인 바자훈장을 수훈(受勳)하셨다. 특히 1975년에는 현 국왕 칼 구스타프 왕의 초청으로 스웨덴 왕실을 방문하심으로서 국위를 크게 선양하셨다.
신라의 얼을 찾아 한평생을 걸어오신 선생의 고귀한 정신을 후세에 길이 전하고자 한다.

1965년 파석불두를 어루만지고 있는 최남주 (경주 박물관 소장)

1975년 스웨덴 국왕 칼 구스타프 16세로부터 초청받아 왕실에서 국왕과 담화를 나누는 모습

1969년 경주 서면 방내리 고분군 발군 현장

2001년 5월 19일 경주시 충효동 김유신 장군묘 입구석당공원에 세워진 최남주 추송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