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입·증여 문화유산 관리

이상 옛집 (비지정 문화재)

문화유산국민신탁이 매입한 첫 번째 문화유산(보전자산)
단명으로 끝난 천재작가 이상의 기억 ‘이상의 옛집 터’

이상은 짧은 생을 마감했지만 시인이자 소설가, 건축가로 활동하며 우리 근현대문학사에서 천재 또는 기인의 신화를 남겼다.
대를 이을 아들이 없었던 큰아버지와 2살 때부터 살면서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야 했지만, 총독부의 기술 관리였던 큰아버지 밑에서 윤택한 생활을 했다. 그러나 고종 때 증조부가 정3품 벼슬을 지낸 강릉 김씨 문중의 종손이 된 사실은 이상에게 적잖은 갈등을 안겨준 듯하다.
이상은 서울 통인동에서 1911년부터 1934년까지, 큰아버지댁이었던 통인동 154번지에서 21년간 살았다. 통인동 154번지는 본채와 행랑채, 사랑채까지 딸린 300여 평의 넓은 집이었다고 전해지나 현재 옛 모습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현재 10여 개의 필지로 분할되어 여러 채의 한옥들이 들어섰으며 이상을 기억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인 통인동 154-10번지는 이상이 20여 년을 살았던 집터의 일부분만 남아 있다.

경주 윤경렬 옛집 (비지정 문화재)

경주 인왕동에 있는 윤경렬 옛집은 고청 윤경렬 선생이 1975년 부터 1999년 작고 전 까지 25년간 거주했던 곳이다.
고청 윤경렬 선생은 6.25전쟁 이후 척박한 문화환경 속에서도 당시 경주박물관장이였던 진홍섭 선생과 함께 ‘경주어린이박물관학교’를 개설하여 어린이들의 감수성 향상 및 교육에 기여했으며, 경주 지역 신라시대 문화재에 대한 평가를 높이는 데 많은 공헌을 한 분이다.

군포 동래정씨 동래군파 종택

동래정씨 동래군파의 종가로. 가옥 안채는 조선 정조 7년(1783)에 세운 것으로 추정하며, 사랑채는 고종 14년(1877)에 지은 것이다.
현재 건물은 안채, 사랑채, 작은사랑채, 문간채, 행랑채가 남아 있으며, 사랑채는 앞면 5칸으로 왼쪽부터 방 1칸·사랑방 2칸·마루방·행사청 순으로 되어 있어 평면 분할이 독특하다.
작은사랑채는 앞면 3칸으로 공부방으로 사용하였다.
문간채는 앞면 3칸으로 대문·창고로 구성되어 있으며 후에 5칸을 더 지어 안채의 폐쇄성을 높여 주었다.
2000년 3월 24일 경기도문화재자료 제95호로 지정된 이곳은 조선 후기 살림집으로서의 전형적인 특징을 유지하고 있으며 사랑채의 평면 분할 방식, 행사청의 구성, 작은사랑채의 위치 설정 등이 독창적이고 기능성을 중시한 집이어서 보존가치가 있는 가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