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국민신탁이 매입한 첫 번째 문화유산(보전자산)
단명으로 끝난 천재작가 이상의 기억 ‘이상의 옛집 터’
이상은 짧은 생을 마감했지만 시인이자 소설가, 건축가로 활동하며 우리 근현대문학사에서 천재 또는 기인의 신화를 남겼다. 대를 이을 아들이 없었던 큰아버지와 2살 때부터 살면서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야 했지만, 총독부의 기술 관리였던 큰아버지 밑에서 윤택한 생활을 했다. 그러나 고종 때 증조부가 정3품 벼슬을 지낸 강릉 김씨 문중의 종손이 된 사실은 이상에게 적잖은 갈등을 안겨준 듯하다. 이상은 서울 통인동에서 1911년부터 1934년까지, 큰아버지댁이었던 통인동 154번지에서 21년간 살았다. 통인동 154번지는 본채와 행랑채, 사랑채까지 딸린 300여 평의 넓은 집이었다고 전해지나 현재 옛 모습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현재 10여 개의 필지로 분할되어 여러 채의 한옥들이 들어섰으며 이상을 기억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인 통인동 154-10번지는 이상이 20여 년을 살았던 집터의 일부분만 남아 있다.
소재지 |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7길 18 |
면적 | 면 적 : 75.3㎡ |
내용 | 시인 이상의 3세~23세까지 거주·활동공간 |
활용 | 이상 기념공간 및 복합문화공간 조성 |
연혁 | 2009년 '이상 옛집' 터 매입 2010년 문화유산국민신탁과 (재)아름지기 협약 체결 2011년 개관식 및 운영 시작 |
고청 윤경렬 선생은 6.25전쟁 이후 척박한 문화환경 속에서도 당시 경주박물관장이였던 진홍섭 선생과 함께 ‘경주어린이박물관학교’를 개설하여 어린이들의 감수성 향상 및 교육에 기여했으며, 경주 지역 신라시대 문화유산에 대한 평가를 높이는 데 많은 공헌을 한 분이다.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양지길 39-3, 39-4 |
면적 | 대지 1,147㎡ (건축면적78.30㎡) |
내용 | 향토사학자 윤경렬의 '75년~'99년까지 거주·활동하였던 공간 |
활용 | 고청선생 기념관, 어린이문화유산 체험장 등 |
연혁 | 1975년 건립 2010년 '경주 윤경렬 옛집' 매입 완료 2011년 '경주 윤경렬 옛집' 보전관리를 위한 업무협약 체결 |
동래정씨 동래군파의 종가로, 가옥 안채는 조선 정조 7년(1783)에 세운 것으로 추정하며, 사랑채는 고종 14년(1877)에 지은 것이다.
현재 건물은 안채, 사랑채, 작은사랑채, 문간채, 행랑채가 남아 있으며, 사랑채는 앞면 5칸으로 왼쪽부터 방 1칸·사랑방 2칸·마루방·행사청 순으로 되어 있어 평면 분할이 독특하다. 작은사랑채는 앞면 3칸으로 공부방으로 사용하였다. 문간채는 앞면 3칸으로 대문·창고로 구성되어 있으며 후에 5칸을 더 지어 안채의 폐쇄성을 높여 주었다. 2000년 3월 24일 경기도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이곳은 조선 후기 살림집으로서의 전형적인 특징을 유지하고 있으며 사랑채의 평면 분할 방식, 행사청의 구성, 작은사랑채의 위치 설정 등이 독창적이고 기능성을 중시한 집이어서 보존가치가 있는 가옥이다.
구분 | 경기도 문화유산자료 (지정 : ’00.4.11) |
소재지 | 경기도 군포시 속달로 110번길 20-11 |
면적 | 대지 18,176㎡ (건축 연면적 216.05㎡) |
내용 | 동래정씨 동래군파 종택 외 전답 |
활용 | 전통과 문화가 어우러진 유기농 공동체 |
연혁 | 2011년 「동래정씨 동래군파 종택」 외 전답 등 '국민신탁' 체결 |
전라남도 고흥 죽산재는 서재 겸 재실로 활용되었고, 기단이나 초석을 잘 다듬어 품격을 높인 근대기(1933년) 의 목조건축물이다. 건축적으로 부재의 기법이 정교하고, 화려하지만 민화풍의 해학적인 느낌과 단청은 불교적인 요소와 근대기의 풍물이나 경관을 표현하는 등 여러 문화가 혼합되어 나타나는 사례이다. 특히 이 건물은 죽파 서덕봉(字화일, 1860~1933)이 서재로 쓰고자 지었으나 준공 후 얼마 사용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자 월파 서민호(1903~1974)선생이 부친의 제실과 서재로 썼다. 서화일은 지주로 사회사업과 복지, 교육 등에도 심혈을 기울였고 아들인 서민호는 조선어학회사건과 항일독립운동을 한 근대 역사인물이다.
죽산재 건립연대는 1933년이다. 2013년 보수정비 공사 당시 발견된 상량문(송병섭 찬)에 따르면 1933년 4월에 상량했음을 알 수 있고, 10월에 서화일이 세상을 떠나면서 제실과 서재로 활용 된 것을 알 수 있다. 고흥 죽산재는 정면 5칸, 측면 3칸, ‘ㄷ’자형 구조이다.
구분 | 전라남도 문화유산 자료 |
소재지 | 전라남도 고흥군 |
면적 | 일원/ 1,252㎡ |
내용 | 죽파 서덕봉의 서재 / 월파 서민호의 부친 제실 및 서재 |
활용 | 서재 겸 재실 |
연혁 | 2013년 보수정비 공사 1933년 죽파 서덕봉 준공 2022년 10월 17일 고흥 죽산재 '국민신탁' 체결 |